해묵은 논의로 보일 수 있으나, 컴퓨터 프로그램의 특허성 문제는 학계와 실무계에서 오랜 기간 많은 이들이 공감해 왔으면서도 쉽게 개선되지 않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심사기준에 의하면 “프로그램 자체”는 특허 대상에서 제외되나, 소프트웨어에 의한 정보처리가 하드웨어를 이용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경우, ① 해당 소프트웨어와 협동해 동작하는 정보처리장치, ② 그 동작방법 및 ③ 해당 소프트웨어를 기록한 컴퓨터로 읽을 수 있는 매체는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 본다. 프로그램을 CD에 담아 거래하던 종래의 시장 상황에서는 “프로그램을 기록한 매체”에 관한 특허등록만으로도 물건의 생산, 사용, 양도 등에 의한 특허침해를 배제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모바일 인터넷 환경에서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만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현 시장구조에서는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특허가 부정되는 이상, 프로그램 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된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甲은 스마트폰으로 원격지에 있는 PC의 전원을 On/Off할 수 있는 App(이하, A프로그램)을 개발하여 ① A프로그램에 의해 구동하는 원격 PC On/Off장치, ② A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원격지 PC의 On/Off를 제어하는 방법, ③ A프로그램이 저장된 기록매체에 대하여 특허등록을 받은 후 애플리케이션 마켓에 올려놓았다. A프로그램을 접한 乙은 A프로그램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App을 개발하여 위의 애플리케이션 마켓에 올린 후 수익을 얻고 있다. 乙이 A프로그램의 기능만을 모방했을 뿐 완전히 다른 언어로 B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위 사례에서 甲은 乙에게 저작권 또는 특허권에 의한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겠는가?
컴퓨터 프로그램 자체만으로 특허등록이 될 수 없는 이상, 앱에 관하여 특허등록이 되어 있다고 해도, 앱만의 배포행위는 특허권의 직접 침해가 될 수 없다. 특허등록을 위해서는 특허청구범위에 앱 이외의 구성요소(저장매체, 앱을 통한 제어방법 등)가 기재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앱의 배포는 필연적으로 특허법 제127조에 규정된 간접침해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데, 특허가 물건의 발명인 경우에는 “그 물건의 생산에만 사용하는 물건”을 생산·양도·대여 또는 수입하는 행위를 간접침해라 하고, 특허가 방법의 발명인 경우에도 “그 방법의 실시에만 사용하는 물건”을 생산·양도·대여 또는 수입하는 행위가 간접침해이므로 앱에 관한 특허가 어떠한 형식이든 간접침해 인정을 위해서는 또다시 프로그램의 물품성을 논의해야 하는 순환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프로그램 자체를 물건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간접침해도 인정될 수 없다. 현행 법 체제에서 위의 甲은 乙에게 특허권을 행사할 수 없다. 또한, 乙이 A프로그램의 기능만을 모방했을 뿐 완전히 다른 언어로 B프로그램을 제작하였으므로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기도 어렵다. 이 점은 현행 법 체계의 허점이다.
사실, 프로그램을 CD 등의 매체에 저장하여 거래하던 시대의 기준으로 앱의 특허성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다. 일본은 2000년에 특허 심사기준을 개정하면서 프로그램을 물건으로 규정하고, 2002년의 특허법 개정시 프로그램을 물건으로 규정하고, 프로그램을 네트워크를 통해 전송하는 행위를 특허법상의 실시 행위로 규정하며 프로그램만의 특허를 인정하였다. 유럽에서는 특허청 심판부가 청구항에 프로그램을 청구한 경우라도 “further technical effect”가 있으면 불특허 대상이 아니라고 심결(T1173_97 심결)한 이후 일정요건을 갖춘 경우 프로그램을 특허로 보호하고 있다. 미국의 심사지침서(MPEP)는 프로그램이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청구되는 경우 특허로 보호됨을 규정하고 있고, BM발명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에서조차 프로그램에 의한 처리가 자연법칙을 이용하여 기술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경우 해당 프로그램은 특허로 보호한다(중국 특허심사규정 제9장).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에 프로그램을 물건으로 규정하고, 프로그램의 전송을 발명의 실시로 규정하는 특허법 개정안이 상정된 바 있으나, 한미 FTA에 따른 이슈들에 묻혀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여러 반대 이유와 시기상조론의 벽에 부딪혀 그 개정안이 폐기되었다.
기능적이고 유용하며 상품으로 거래되는 ‘프로그램’을 발명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① 발명의 정의 규정에 맞지 않는다, ② 프로그램은 물건인지 방법인지 불분명하여 발명의 카테고리를 정할 수 없다, ③ 프로그램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다, ④ 프로그램 기술은 그 속성상 ‘점진적’이어서 진보성이 없다, ⑤ 프로그램은 선행기술 검색이 어려워 심사가 지연되고, 부실권리를 양산할 수 있다, ⑥ 특허등록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에 비해 프로그램은 Life Cycle이 짧아 특허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고, 개발비용도 소규모 이므로 권리화 필요성이 적다, ⑦ 프로그램이 공개되면 프로그램의 무단복사를 조장하게 되며, 이에 따른 침해 파악이 어렵다’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①을 이유로 드는 반대론자는 발명이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임을 명시한 특허법 제2조 제1호가 존재하는 한 프로그램을 발명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단, 반대론자도 프로그램이 기술적 사상의 창작임을 부정하지는 않고, 자연법칙을 이용한 것이 아님을 문제 삼는 것이다. 그러나 특허법 제2조 제1호의 존폐여부를 떠나 산업재산권 제도는 산업발전을 목적으로 정책적인 판단에서 법제화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산업재산권은 국가의 정체성이나 인간의 기본권에 관한 것이 아니므로 이해득실을 따져 정의규정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게 운용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현 특허제도에서 BM특허를 인정하는 것이 그렇고, 디자인보호법에서 글자체 디자인의 물품성을 의제하는 것이 그러하며, 상표법에서 상표를 시각적인 것으로 정의했던 것을 고쳐서 비시각적인 것까지 확대한 것이 그러하다. 정의 규정은 정책적 필요에 따라 개정할 수도 있고, 특칙을 마련할 수도 있으며, 개정이나 특칙 마련 없이 실무적으로 확대 해석하여 운용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미시적인 관점에서 프로그램은 전자적 신호를 생성·제어하는 것이므로 이 또한 자연법칙을 이용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①의 이유는 수긍할 수 없다.
②는 동문서답형 반대론이다. 발명의 카테고리는 독점권의 내용을 확인하자는 것이니 발명의 특성에 따라 분류하면 그만이다. 프로그램을 이용한 방법은 지금도 “방법”을 카테고리로 하여 특허를 받을 수 있다. 프로그램 자체의 특허를 인정하자는 주장은 프로그램을 물건으로 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반대를 하려면 프로그램의 물품성을 부정해야 한다. 그러면 “물건”이란 무엇인가. 우리 민법 제98조는 물건을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무체물도 관리가능성이 있으면 물건으로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 민법(제85조)은 물건을 유체물로 한정하고 있어 프로그램을 물건으로 보호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특허법을 개정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프로그램을 물건으로 인정할 근거가 민법에 명확히 있으므로 특허법의 개정 없이도 프로그램의 물품성을 인정함에 큰 무리는 없다고 본다.
③에 대해서는 저작권이 “표현”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기술적 사상” 보호를 위한 특허권과 중복되지 않는다고 반박할 수 있다. 오히려 프로그램은 기술적 사상, 즉 아이디어에 본질이 있는데, 아이디어적인 부분이 강조될수록 저작권법상의 보호범위는 좁아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는 해결되기 어렵다.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는 특허로 보호하고 표현은 저작권으로 보호하는 것이 어떤 점에서 불합리한지를 알 수 없다. 물건에 대하여 내재된 기술은 특허나 실용신안으로 보호하고 외관은 디자인으로 보호하고 식별표지는 상표로 보호하는데 이것 역시 불합리하다고 할 것인가. 또한, 지식재산권 상호간에는 그 보호의 영역이 중복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특허법 제98조, 실용신안법 제25조, 디자인보호법 제45조, 상표법 제53조에는 이종 권리간의 저촉관계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프로그램 발명의 인정시 특허와 저작권간의 저촉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생소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응용미술저작물과 제품디자인간의 권리 중첩은 그야말로 보호범위가 중첩되어 문제가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에 대한 특허권과 저작권은 그 보호대상이 상이하고 권리 내용이 상이하므로 이는 권리 중첩이라 볼 수 없다.
④는 특허제도 폐지론을 위한 논거이다. 특허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아니라면 프로그램의 특허성을 부정하기 위한 논거는 될 수 없다고 본다. 모든 기술은 종래기술을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개발된다. 물론 점진적인 기술발전 중에서 진보성이 있는 것이 특허대상이 되는 것이고, 획기적인 기술이라면 진보성을 인정받기 좋을 것이다. Google의 Page-Ranking 기술(U.S.Pat. 6,285,999)은 획기적인 기술로 평가받는 프로그램 발명의 좋은 예이다. 특허출원된 프로그램이 선행기술에 비해 진보성이 없다면 특허거절결정을 하면 된다.
⑤와 같이 심사가 어려워 프로그램 특허를 포기하자는 주장에는 동참할 수 없다. 그리고 현 제도하에서도 프로그램을 이용한 방법과 프로그램을 저장한 매체에 대해 심사를 잘 하고 있는데, 방법과 매체를 빼고 프로그램만을 청구범위에 기재했다 하여 심사가 갑자기 어려워질 일도 없다. 부실권리 양산의 문제는 특허제도 자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특허를 받으려면 전 세계의 선행기술 중 어느 하나라도 동일한 것이 있거나, 전 세계의 선행기술 중 어느 하나 또는 2개 이상으로부터 쉽게 도출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진보성의 기준을 높이는 한 무효가능성은 높을 수 밖에 없다. 이 점은 특허제도 전반에 걸쳐 고민할 문제이지 프로그램 발명만의 문제는 아니다.
⑥은 오히려 프로그램 특허를 지지하는 논거로 삼기에 적당하다. 프로그램은 통상 Life Cycle이 짧으니 프로그램 저작권이 저작자 사후 70년까지 보호된다한들 그 실익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특허제도라면,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기술사상을 추출하여 특허청구범위로 작성할 수 있고, 이것은 후속적으로 발생하는 개량 프로그램에 대한 원천기술의 위치를 점할 수 있다. 프로그램의 개발이 지연되는 경우에는 그 기본적 기술사상에 대해서 먼저 특허출원을 하여 권리화할 수 있으며 프로그램의 개발이 완료되어 조속한 권리보호가 필요한 경우라면 우선심사제도를 활용하여 심사기간을 수개월 이내로 크게 단축시킬 수 있다. 특허출원 및 등록비용이 많다고 특허출원을 포기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발명자 또는 기업의 몫이다. 유독 프로그램 발명에 대해서만 출원인의 경제 사정을 걱정해줄 필요는 없다. 또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되는 프로그램은 개발비용이 고액이므로 프로그램이라 하여 개발비용이 소규모라는 것은 편견이거니와, 적은 비용을 투자하여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야 말로 우리가 지향해야할 영역이다.
⑦은 저작물의 보호요건과 특허 등록요건을 혼동하여 특허를 위해서는 프로그램 소스를 전부 공개해야 하는 것으로 오인함에서 비롯된 주장으로 보인다. 프로그램 발명의 공개는 프로그램 소스의 공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그램 발명의 기술사상은 구체적인 소스코드가 아니라 플로우 차트에 있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플로우 차트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특허법이 요구하는 공개로서 충분하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유통되면 플로우 차트를 추출해 내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 프로그램을 특허출원을 하는 것과 시중에 유통시키는 것은 기술공개 측면에서 유사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결국 ⑦은 침해가 우려되니 프로그램 사업을 하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특허권은 기술 공개에 대한 대가로 부여되는 배타적 권리이다. 기술을 영업비밀로 보호할지, 특허출원을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모든 기술 영역에 주어지는 선택지이다. 프로그램의 경우 소스코드는 영업비밀화 할만 하겠으나 프로그램의 기능, 작용 및 효과를 비밀로 하기는 어려우니 특허출원이라도 할 수 있어야 타인의 무단 침해를 배제할 수 있다. 침해가 우려된다고 선택지를 미리 박탈해서는 아니된다.
법률이 기술과 사회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그러함에도 지식재산권법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매년 한 두 차례씩 개정되어 왔다. 다만, 프로그램을 물건으로 보아 그 자체에 특허를 부여하는 것은 현 특허법 하에서도 무리가 없다고 본다. 프로그램을 앱마켓에 업로드 하는 것도 ‘물건의 양도를 위한 청약 또는 전시’라 할 수 있으므로 굳이 발명의 실시태양에 ‘전송’의 개념을 도입하지 않아도 문제 없다고 본다. 그러나 프로그램 발명 보호를 위한 명확한 법적근거 마련을 위해 프로그램을 물건으로 규정하고, 프로그램의 전송을 발명의 실시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특허법을 개정하자는 입장도 충분히 이해된다. 어찌하건 프로그램 발명을 인정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1984년 12월 「컴퓨터관련 발명에 관한 심사기준」이 마련된지도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간다. 그 기간 동안의 숱한 변화 속에서 유독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한 취급만이 80년대 초의 기준에 머물러 있다. 그것도 우리나라만 그러하다. 이러한 답보가 그 어떤 손익계산의 결과물인지 진정으로 궁금하다.
조성광 변리사
<지본특허법률사무소>
[특허와상표 제809호 6면]
출처
:특허와 상표